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겐 현실이다. 아침에 눈을 떠 그 일이 기다려진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일까. 처음엔 정말 그렇다. 내가 선택한 일, 내가 잘하는 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이 축복도 시간이 지나면 무게를 가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부담, 실패하면 더 아프다는 감정, 너무 많이 몰입한 탓에 지쳐버리는 마음. 어느 순간 그 일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해야만 하는 것'으로 변한다.
그 지점이 바로 번아웃의 시작이다. 이 글은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감정을 어떻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 즉 ‘감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정도 자원이다: 소모와 회복의 리듬을 만들기
많은 사람들은 열정을 무한정한 에너지로 착각한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쳐도 괜찮아', '힘들어도 좋아서 버틸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도 물리적인 자원과 같다. 과하게 쓰면 고갈되고, 회복하지 않으면 손상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이 감정 에너지의 관리 실패에 있다.
한 예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고, SNS에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즐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번엔 어떤 반응이 올까?", "좋아요 수가 왜 이렇지?",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이 감정 에너지의 방향을 바꾼다. 자발적인 몰입이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노력으로 전환되는 순간, 감정은 더 많이 소모되고, 회복은 더디게 된다.
이처럼 감정은 의욕이 넘친다고 해서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선 감정 사용의 총량을 조절하고, 쓰는 만큼 회복하는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하루 단위가 될 수도 있고, 주간 또는 월간 단위의 루틴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하루는 ‘감정 회복일’로 정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방식이다.
감정은 쓰기만 해선 안 된다. 마음의 잔고를 체크하고, 남아 있는 여유를 스스로 측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리해서 다 써버리면, 나중에 정말 필요한 순간 정작 감정을 꺼낼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 일을 좋아한다면, 오랫동안 하고 싶다면, 더 많이 하기보다 오래 하기 위한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은 자원이고, 그 자원을 계획적으로 쓰는 것만이 번아웃을 예방하는 첫걸음이다.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습관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체온이 서서히 올라가듯, 감정의 균형이 조금씩 틀어지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다가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정의 흐름을 스스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오늘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그 상태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감정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록’이다. 매일의 감정을 짧게라도 적어보는 습관은 스스로를 관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오늘은 일은 잘 풀렸지만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했다.”, “글을 쓰고 있는데 평소보다 오래 걸리고 집중이 안 된다. 아마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식의 기록은 감정과 행동을 연결해 이해하는 통찰을 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감정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좋다’와 ‘싫다’, ‘하기 싫다’와 ‘해야 한다’로 감정을 구분한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훨씬 복합적이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고, 좋아하지만 힘들 수도 있다. 이 감정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지나가는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준다.
기록은 도구일 뿐 아니라 회복의 수단이기도 하다.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뇌에 남아 부정적인 에너지로 쌓인다. 반면 글로 쓰고 외부로 표현하면, 그것은 내 안에서 빠져나와 나를 덜 무겁게 만든다. 감정 기록은 일종의 ‘정서적 해독 과정’인 셈이다.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입장에 선다. 그리고 바로 이 인식이 번아웃을 막는 정서적 기술이 된다.
감정은 나를 위한 도구여야 한다: 타인을 위한 소모를 멈추기
우리는 대체로 감정을 ‘타인을 위해 써야 하는 것’으로 배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글을 쓸 때 독자를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때 감동을 주고 싶고, 서비스를 제공할 때 상대방의 반응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이 과정은 자주 미화되지만, 그 감정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때, 그건 결국 소모로 끝난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 문제는 심각하다. “고객에게 진심을 다해야 해”, “내 작업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 같은 말들은 아름답지만, 그 진심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고통이 된다. 감정은 일방통행일 수 없다. 타인을 향해 흘러간 감정이 내 안에도 순환되어야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건 감정을 쓰기 전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이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이 감정은 나의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반응에 따라 형성된 감정인가?”,
“지금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감정 사용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감정을 타인을 위해 쓰되, 반드시 자기 감정을 챙기는 방식으로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또한 감정을 너무 자주, 너무 깊이 쓰지 않기 위해선 일과 감정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감정 없이 일할 수는 없지만, 감정만으로 일할 수도 없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몰입, 그리고 적당한 무관심이 균형을 만든다. ‘진심이지만 휘둘리지 않는 태도’, ‘몰입하지만 중독되지 않는 태도’. 이것이 감정을 지키는 방식이자, 좋아하는 일을 지키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기 위해선 감정도 일처럼 다뤄야 한다. 감정은 나의 도구여야지, 나를 해치는 요소가 되어선 안 된다. 그 도구를 잘 다루기 위해 우리는 매일 감정을 연습하고, 기록하고, 거리두고, 회복해야 한다. 결국 감정을 잘 쓰는 사람이야말로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