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새로운 거 안 해?”, “다음 목표는 뭐야?”, “이제는 더 큰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성장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됐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무겁고 불편해진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잠시 쉬고 있는 나 자신을 ‘게으르다’고 느끼게 만든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압박감은 더 크다. 남들은 그 일을 하면서 ‘멋지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간다.
모든 순간이 성장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멈춤이 더 큰 성장의 기반이 된다. 이 글은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기 위한 시선과 방법을 나누고자 한다.
‘성장’을 강요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우리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은 계속 올라야 하고, 대학에 가면 스펙을 쌓아야 하며, 사회에 나오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넓은 집으로 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 이 모든 흐름이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심는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흔든다.
특히 자율적으로 일하는 사람들—프리랜서, 창작자, 자영업자—에게 이 압박은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회사에서의 성과 평가 대신, 스스로가 자신의 성장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 뭐하고 있지?”, “이거 말고 더 새로운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다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왜 여기에 머물러 있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문제는 이 성장이 외부 기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팔로우 받고, 더 많은 댓글을 얻어야만 ‘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외부 중심의 성장은 자신을 계속 비교하게 만들고, 결국 자기만의 리듬을 잃게 만든다. 그 결과는 번아웃이다. 일의 재미보다 불안감이 커지고, 좋아하던 일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이 흐름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성장의 정의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더 크고, 더 많이,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깊이, 더 진하게, 더 단단하게로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 책을 하나 더 쓰지 못했더라도, 내가 나에게 정직한 글을 하나 썼다면 그것도 성장이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살았다면 그것도 성장이다.
우리는 가끔 ‘나아가는 일’만이 성장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만히 머무는 시간도,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도, 자신의 속도를 확인하는 일도 모두 성장이다. 세상이 말하는 성장과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성장의 시작이다.
멈춤은 퇴보가 아니다: 정체의 시간에 의미 부여하기
많은 사람들은 ‘멈추면 안 된다’고 믿는다. 일의 흐름이 끊기면 감도 떨어지고, 루틴이 깨지면 돌아오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쉬는 것’이 어쩐지 불안하고, ‘정체된 상태’는 실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멈춤 그 자체가 아니라, 멈춤을 실패로 간주하는 인식이다.
모든 성장은 직선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은 ‘평탄하고 특별하지 않은 순간’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무가치하게 여기지만, 그 사이사이에 몸은 쉬고, 마음은 정리되고, 머릿속은 다시 재정비된다. 이 조용한 시간들이 쌓여야만, 다시 움직일 힘이 생긴다. 자동차도 속도를 내기 위해 기어를 낮추고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이 필요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다.
멈춤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선 먼저 ‘정체기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정체는 곧 준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고, 정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창작자에게 이 시간은 필수다. 영감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머리보다, 여유 있는 마음에서 더 잘 자란다.
실제로 많은 작가, 예술가, 사업가들이 멈춤의 시기에서 인사이트를 얻는다. 어떤 작가는 1년에 두 달은 글을 쓰지 않기로 정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비움’에 쓴다. 또 어떤 프리랜서는 바쁘게 프로젝트를 수행한 다음 달에는 아무 일도 잡지 않는다. 그 시간에 정리하고, 뒤돌아보고,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이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더 오래, 더 단단하게 지속할 수 있다.
멈춤은 결코 퇴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장을 위한 의식적인 선택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멈춤에 스스로가 납득하는 것, 그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멈춘다고 해서 내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쉰다는 이유로 내가 게을러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더 멀리, 더 오래간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용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있다. 누군가는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해내고 있고, 누군가는 SNS에서 멋진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타인의 속도가 곧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느림’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조급하지 않기 위해, 내가 나만의 속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일 용기를 내야 한다.
이 용기의 핵심은 ‘충분하다’는 자기 확신에서 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작아 보여도, 누군가의 기준에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나에겐 의미 있다면 충분하다는 마음. 더 크고 빠르게 가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계속해서 남의 속도를 따라가다 지치게 된다.
이 속도를 지키기 위해선 주기적인 자기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나를 다시 중심으로 되돌려준다. 그리고 중심을 지킨 사람만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야 한다.
또한 느린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관계 정리도 필요하다. 주변에 ‘계속 나아가야 해’, ‘이대로는 안 돼’라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말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모든 관계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조용히 지켜봐주고, 아무 말 없이 함께 쉬어주는 사람 한 명이 더 큰 위로가 된다.
‘나만의 속도’는 단순히 느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답게 움직이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속도. 그 속도 안에서 숨을 쉬고, 생각하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진정성 있게. 더 크게가 아니라, 더 깊이 있게. 그것이 진짜 성장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