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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독이 될 때

by memo7919 2025. 5. 14.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시작의 가장 강력한 동기다. 누구나 처음엔 이 마음 하나로 움직인다. 더 나아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내가 만든 무언가가 가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점점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치기 시작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부담이 되고, 긴장이 되고, 자신을 압박하는 기준이 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칭찬받을 감정이지만,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은 그 마음이 어떻게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놓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독이 될 때

‘잘하고 싶다’는 기준이 자기 자신을 옥죄기 시작할 때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 우리는 그저 즐겁다. 글을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카메라를 들었을 때도, “이걸 잘해야지”보다는 “이게 재밌다”는 감정이 앞선다. 그런데 조금씩 실력이 늘고, 주변에서 인정도 받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더 잘해야지”, “이 정도로는 부족해”,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게 해야 해.”
이렇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나를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처음엔 자기 만족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는 외부의 기대와 기준을 따라가기 위한 일이 된다.

이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과도한 자기 검열이다. 글 하나를 쓰더라도 수십 번 고치고, 디자인 하나를 결정하기까지 몇 시간씩 고민하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불안에 시달린다. 완벽하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고, 부족한 상태로는 나 자신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건 겉보기에 노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속엔 늘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이 숨어 있다.

또 하나의 징후는 작업의 속도가 느려지고, 시작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잘하고 싶기 때문에, 함부로 시작하지 못한다. 완벽한 기획, 명확한 컨셉, 충분한 리서치가 갖춰지지 않으면 도전조차 못 한다. 이 마음이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잘하기 위해서’ 시작하지 않는 역설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중요한 건, ‘잘하고 싶다’는 감정을 나눠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누군가의 기대? 내 과거의 성취?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마음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구체적인 언어로 바꿔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이번에는 조금 더 집중해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구나”, “지난번보다 좋아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구나.”
이렇게 감정을 나눠보고 정리하면, ‘잘하고 싶다’는 감정이 더 이상 나를 옥죄는 무기가 아니라, 내가 다룰 수 있는 감정으로 바뀐다.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벗어나는 구조 만들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압박은 창작, 업무, 일상의 모든 활동을 무겁게 만든다. 어떤 일도 가볍게 시작할 수 없고, 작은 시도조차 큰 부담이 된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음을 다잡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감정을 완화해주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시작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 중심으로 시작 기준을 잡는다. 예: “이 프로젝트는 최소 이 정도 퀄리티는 나와야 해”, “이 글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야 해.” 이런 기준은 처음 손을 대는 순간부터 부담을 만든다. 시작 전부터 끝의 모양을 그리면, 시작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시작은 아무렇게나, 끝은 정성스럽게’라는 원칙을 쓴다. 초안은 거칠어도 괜찮고, 아이디어는 조잡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단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식의 허용 구조는 작업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감정의 부담을 줄인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작은 피드백 루프 만들기다. 우리는 완성된 작업을 평가받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긴장과 두려움을 낳는다. 대신 진행 중간중간 스스로 점검하고, 소소한 피드백을 기록하며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루틴이 필요하다. 예: “오늘 이 파트를 끝낸 것만으로도 잘했다”, “전보다 집중 시간이 늘었다.”
이런 긍정 피드백이 축적되면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은 ‘조금씩 잘해지고 있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조는 비교하지 않는 기준을 갖는 것이다. 타인의 결과물, 반응, 성취는 내 기준이 될 수 없다. ‘잘함’의 기준을 외부에 두는 순간, 우리는 계속해서 조급해진다. 내가 스스로에게 정해주는 기준—예: “이 작업은 내가 나에게 진심을 다한 결과인가?”,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고 있는가?”—을 중심에 두면,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잘해야만 한다’는 감정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이다. 그 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은 무작정 힘을 내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들어오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있을 때, 우리는 더 가볍게, 더 자유롭게 ‘잘해지고’ 있을 수 있다.

 

잘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


가장 건강한 창작자, 혹은 일꾼은 잘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오늘은 몸이 무겁고 집중이 안 돼도, 어제보다 나아진 게 없어도, 멈추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 이건 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신뢰와 감정 관리의 총합이다.

잘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으려면 먼저 실패를 정상화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는 실패를 ‘예외’로 생각한다. 그래서 실패할 때마다 좌절하고, 모든 걸 의심한다. 하지만 실패는 흐름 속의 일부일 뿐이다. 특히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더 그렇다. 감정, 환경, 체력, 영감, 타이밍… 모든 요소가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 되는 날도 원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회복을 빠르게 만든다.

두 번째는 자기 연결 루틴이다. 결과가 없을 때, 우리는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었는지를 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야 한다. “처음 이 일을 왜 시작했지?”, “내가 느끼고 싶었던 감정은 무엇이었지?”, “이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지?” 이런 질문은 나를 결과가 아닌 ‘동기’로 다시 연결시켜준다. 그 연결이 있어야 우리는 잘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장의 단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을 결과물로 측정한다. 하지만 어떤 성장은 ‘오늘 30분 집중한 것’, ‘불안한 상태에서도 글을 시작한 것’, ‘도저히 쓰기 싫은 날 한 줄이라도 적은 것’ 같은 아주 작은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미세한 성장을 자각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습관은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확신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나만의 리듬을 신뢰하는 것’이다. 누구나 흐름이 있고, 속도가 있다. 어떤 날은 단어가 술술 나오지만, 어떤 날은 한 줄도 힘들다. 문제는 그 흐름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런 날이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잘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가장 오래 가는 사람이다. 완벽한 날이 아니라, 불완전한 날에도 멈추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