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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감정을 꺼내는 관찰 훈련

by memo7919 2025. 5. 16.

사람은 익숙함에 무뎌진다. 매일 지나던 길, 늘 마주하던 창밖 풍경, 똑같은 위치에 놓인 사물들. 처음엔 눈에 들어왔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배경처럼 흐려진다. 문제는 이 무뎌짐이 우리의 감정과 창작 감각까지 닫아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익숙함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감정을 꺼내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에서도 감정을 꺼내는 능력은 훈련할 수 있다. 이 글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되살리는 관찰 훈련법을 이야기하며, 감정과 문장을 복원하는 작고 효과적인 기술들을 소개한다.

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감정을 꺼내는 관찰 훈련

 

감정은 대상을 보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할 때, 대부분은 ‘무언가로부터 감정을 받는다’고 여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감동하고, 슬픈 장면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러나 감정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같은 하늘을 봐도 어떤 날은 외롭고, 어떤 날은 평화롭고, 어떤 날은 아무 감흥이 없다. 이것은 하늘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감정을 깨우는 핵심은 관찰이다. 그리고 그 관찰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익숙한 풍경에서 감정을 꺼내려면, 먼저 시선을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매일 보던 나무 한 그루도, 그 잎이 얼마나 자랐는지, 빛을 어떻게 반사하는지, 그 아래 그림자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에 주목하면 전혀 새로운 장면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사소한 변화에 반응하는 감각이다. 오늘은 그 나무 아래에 떨어진 낙엽이 유난히 많았다든지, 지나가는 사람이 유독 천천히 걸었다든지, 햇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든지. 이런 사소한 포착들이 감정을 만든다.

우리는 종종 ‘대단한 장면’에서만 감정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창작자에게 더 중요한 건 사소한 것에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익숙한 풍경을 다시 보는 연습에서 길러진다. 감정은 대상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대하는 나의 방식에 있다. 이 방식이 훈련되면, 일상의 모든 장면이 문장이 될 수 있다.

 

반응하지 말고 머무는 시간 만들기


감정을 꺼내는 관찰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즉각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보자마자 바로 판단하고,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예를 들어 창밖을 보며 “오늘은 날씨가 좋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풍경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좋다’는 말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이름 붙이기 전에 태어난다. 즉, 감정은 판단 이전의 ‘머무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필요한 건 관찰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5초 더 보기’ 훈련이 있다. 눈앞의 장면을 보고 바로 반응하지 말고, 5초만 더 머무는 것이다. 나무를 보면 바로 ‘나무’라고 판단하지 않고, 5초 동안 그 나무가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나뭇가지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 옆의 사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본다. 그 5초는 생각보다 많은 감각을 깨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곧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 훈련은 습관처럼 해야 효과가 있다. 처음엔 불편하고 낯설 수 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머무는 능력’이 생긴다. 이 능력이 생기면, 우리는 익숙한 것에 반응하지 않고, 익숙한 것 속에서 다시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 머무는 시선은 세밀해지고, 감정은 천천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 것이 된다. 감정을 스스로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감각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익숙함을 감정의 기록으로 전환하는 루틴


관찰이 감정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단계라면, 그것을 기록하는 건 감정을 내면화하는 두 번째 단계다. 익숙한 풍경에서 감정을 꺼냈다면, 그 감정을 바로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은 쉽게 사라지고, 관찰은 흔적 없이 흐른다. 중요한 건 ‘기록이 곧 감정의 구조’라는 사실이다. 글로 쓰는 순간, 그 감정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이때 기록은 길거나 거창할 필요 없다. 예: “오늘 햇빛이 카페 창문을 깊게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이런 짧은 한 줄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이 내 감정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익숙한 풍경이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게 된다. 기록은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든다.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기록 루틴을 만든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풍경. 하지만 매일 다른 감정, 다른 감각, 다른 단어를 꺼내기 위한 연습이다. 기록은 단지 글쓰기의 재료가 아니라, 감정 회복의 도구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창작자가 익숙함에 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장을 쓰는 방식이다.

기록이 쌓이면 관찰은 더 정교해지고, 감정은 더 깊어지며, 글은 더 진실해진다. 결국, 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감정을 꺼내는 관찰 훈련은, 나를 관찰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곳에 있어도,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감정으로 기록해낼 수 있을 때, 일상은 더 이상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보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