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매일 쓰다 보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건 ‘고갈’이다. 처음에는 쓸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얘기를 또 써도 되나?’, ‘이 감정을 또 꺼내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스며든다. 특히 일정한 루틴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과 감정 속에서 새로운 문장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떤 사람은 똑같은 리듬 안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문장을 건져낸다. 심지어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써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이 차이는 재능이나 영감의 문제가 아니다. 루틴 속에서 ‘다시 쓰고 싶은 말’을 발견하는 기술, 바로 그 반복을 다루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도 글을 계속 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각 훈련과 관점 전환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같은 경험을 다르게 읽는 시선 만들기
우리는 ‘다 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주제를 다시 꺼내기를 꺼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경험도 그때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 경험을 처음 썼을 때는 ‘하루의 시작을 여는 루틴’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은 ‘커피 한 잔에도 기대지 못하는 고단함’이 되었고, 또 다른 날은 ‘마침내 익숙해진 고요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경험은 같지만,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그 감정을 따라 문장의 결도 달라진다.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쓰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읽는 사람의 반응’ 때문일 때가 많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에서 반복되지 않는 감정을 기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건 독창적인 주제가 아니라, 감정의 관점이 바뀌었는가이다. 내가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느낀다면, 같은 이야기도 전혀 다른 글이 된다. 이것이 반복을 새로운 글로 전환하는 첫 번째 감각이다.
이를 위해 나는 자주 쓰는 주제를 정리하고, 그 주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기록해 둔다. 예를 들어 ‘출근길’이라는 주제를 일주일 동안 다섯 번 썼다면, 각각의 날에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정리해본다. “오늘은 바람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어제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 보였다”, “나는 왜 오늘 음악을 듣지 않았을까.” 이처럼 작은 감정의 차이를 포착하는 능력이 쌓이면, 같은 루틴 속에서도 계속 다른 글을 쓸 수 있다. 글이란 결국 감정의 온도차를 언어로 남기는 작업이다.
‘다시 쓰는 글’에서 발견하는 진짜 이야기
많은 창작자들이 “이건 전에 썼던 거야”라며 어떤 주제를 아예 피하려 한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쓰는 것은 창작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는 기회일 수 있다. 우리가 반복해서 생각하는 감정, 자주 떠올리는 장면, 글 속에서 자꾸만 언급되는 단어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 가장 붙잡고 있는 삶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이 반복이 나를 말하게 하고, 나를 드러내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다시 쓰는 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가 아니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능하다. 처음에는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서툴렀거나, 도망치고 싶었거나,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을 다른 시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쓰는 글은 첫 글보다 훨씬 진솔하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나는 한 번 썼던 이야기를 일정 시간 간격으로 다시 꺼내 써보는 연습을 한다. 예를 들어 ‘작별’이라는 주제를 6개월 전에도 썼고, 최근에도 다시 썼다면, 두 글을 비교해본다. 놀랍게도 문장의 색감이 전혀 다르다. 예전엔 날이 서 있고, 최근에는 조용한 이해가 담겨 있다. 이 차이는 단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내가 그 감정의 주인공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 과정 속에서 문장은 조금씩 나의 언어로 깊어져 간다.
루틴을 감각으로 환기시키는 기술
루틴은 반복되는 행위이지만, 그 안에 감각이 깨어 있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커피를 마시며, 같은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가 쓰는 글이 매번 새로운 이유는, 루틴을 의식적으로 감각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은 스스로 환기시켜야 한다. 반복이 무뎌질수록 우리는 루틴 안에서 감각을 꺼내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루틴 속에서 감각의 중심을 하나씩 정해보는 것이다. 오늘은 ‘소리’에 집중하겠다고 정하면, 주변의 대화, 키보드 타자 소리, 창밖의 새소리 같은 것을 민감하게 듣는다. 다음 날은 ‘냄새’를 정해서 카페 안의 공기, 커피 향, 가방 안 책 냄새 같은 감각을 끄집어낸다. 이런 식으로 루틴의 감각 포인트를 달리하면, 같은 일상도 매번 다르게 경험된다. 그리고 그 감각의 차이가 문장의 다름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루틴 안에서 일부러 ‘작은 변칙’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보다 15분 일찍 자리에 앉는다든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를 마셔본다든지, 글쓰기 시작 전 간단한 필사나 구절 베껴쓰기를 해보는 식이다. 이런 사소한 변화는 루틴에 긴장감을 주고, 익숙함 속에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감각이 깨어 있으면 감정도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그리고 감정이 살아나면, 문장은 이전과는 또 다른 흐름으로 쓰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루틴을 스스로 인정하는 태도다. ‘나는 늘 같은 리듬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반복이 나를 만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루틴은 지루함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기반이 된다. 반복은 창작의 적이 아니다. 무감각이 적이다. 감각을 불러내는 루틴, 감정을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루틴, 그런 루틴이 있다면 우리는 같은 이야기도, 같은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쓰고 싶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