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에게 ‘듣는 일’은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글의 재료를 삶에서 얻는다. 그리고 삶의 가장 진한 장면은 종종 대화 속에 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진심이 느껴졌던 한 문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표현. 그것들이 글의 시작이 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말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 구조, 말투를 지나쳐버린다. 대화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속에서 문장을 건져내기 위해선 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청각 감각, 즉 듣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글은 평범한 대화 속에서 ‘글이 될 수 있는 말’을 포착하는 감각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타인의 말에서 나의 문장을 발견하는 훈련, 그것은 곧 삶을 더 섬세하게 살아내는 연습이기도 하다.
말의 ‘내용’보다 ‘방식’을 듣는 연습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내용에 집중한다. 정보, 주장, 요점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떻게 말했는가’다. 똑같은 말도 말투, 억양,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예를 들어 “괜찮아”라는 말은 다정한 위로일 수도 있고, 냉소적인 회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말이 어떤 결로 나왔는지를 듣는 감각이다.
이 훈련의 첫걸음은 ‘말의 리듬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을 빠르게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단어 사이를 길게 멈춘다. 누군가는 끝맺음을 흐리고, 누군가는 단호하게 마무리한다. 이 리듬이 말의 감정을 담고 있다. 나는 대화를 들을 때 종종 속으로 그 말의 리듬을 흉내 낸다. 그 사람의 말투를 그대로 되새기면, 감정이 훨씬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문장을 고를 때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두 번째는 ‘의도와 망설임을 동시에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때 종종 머뭇거린다.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마음을 숨기거나,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뱉으려 할 때다. 그 틈을 주의 깊게 들으면, 말로 표현되지 않은 진심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사실은… 아니야, 됐어”라는 말 속엔 감정의 파도가 있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글의 핵심 문장이 숨어 있는 자리다. 그런 말을 기록하고, 그 틈을 언어로 채워 넣는 게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처럼 듣는다는 건 단지 소리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감정의 흐름, 말의 리듬, 말하지 않은 말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 말들 속에서 우리는 나의 언어로 다시 쓰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보다 메모가 더 많은 문장을 남긴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지만, 그 말들을 대부분 잊어버린다. 그 순간은 분명 인상 깊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어도 감정도 흐려진다. 그래서 대화에서 문장을 건져내기 위한 핵심은 ‘기억하지 말고 메모하는 것’이다. 들으면서 바로 적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언어로 붙잡을 수 있다.
나는 평소 메모장 앱이나 종이 노트를 자주 사용한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길을 걷다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인상적인 말이 들리면 최대한 빨리 적는다. 예를 들어 “그 말은 내가 아닌 척하게 만들어” 같은 문장은 한 대화 중 튀어나온 짧은 말이었지만, 내게는 하루 종일 남아 있던 문장이었다. 이런 말들은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단어 자체의 힘이 있다. 감정이 담긴 문장, 생각이 머무는 문장, 그런 말들은 반드시 메모로 남겨야 한다.
메모를 습관화하면 말 속에 숨어 있는 문장에 점점 민감해진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단서 삼아 나만의 글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 메모를 바탕으로 일주일에 한두 편의 에세이를 쓴다. 한 문장이 감정의 문을 열고, 그 문을 통해 내 생각이 쏟아진다. 타인의 말이 내 언어의 시작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글은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 말은 ‘한 사람이 진심으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심에 공명한다. 그래서 말은 쉽게 잊히지만, 감정은 오래 남는다. 감정이 살아 있는 말은 반드시 메모로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글의 뿌리가 된다.
말을 통해 삶을 해석하는 감각을 키운다
대화를 듣는다는 건 단지 말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시선을 기르는 일이다. 우리가 들은 말은 그 사람의 삶의 결을 반영한다. 말투, 단어 선택, 멈칫하는 지점, 반복되는 표현들 속에는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이 스며 있다. 그걸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면, 우리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는 글로 확장된다.
나는 평소 대화를 듣고 난 뒤, 그 사람의 말에 담긴 ‘삶의 조각’을 따로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 요즘 너무 조용해지고 싶어”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 문장 뒤에 있는 이유를 상상한다. 너무 시끄러운 감정, 지나치게 많은 자극, 스스로를 잃어버린 느낌. 이 상상은 그 사람의 삶을 내 언어로 해석해보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은 에세이의 시작이 된다. 단순히 말을 옮기는 게 아니라, 그 말을 나의 관점으로 다시 쓰는 일. 이것이 진짜 글쓰기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삶의 사소한 장면에서도 글의 소재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상 대화가 의미 있게 들리고, 사람들의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감정은 공감을 낳지만, 감각은 문장을 낳는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서 감각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변화를 만드는 도구가 바로 ‘듣기’다.
결국 평범한 대화에서 문장을 건져낸다는 건, 소리를 언어로 바꾸고,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며, 삶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다. 우리는 모두 말하고 있지만, 모두가 들을 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들을 줄 아는 사람’만이, 말 속에서 진짜 문장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