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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게 없다는 날, 무조건 한 줄을 쓰는 이유

by memo7919 2025. 5. 19.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날을 겪는다. “오늘은 진짜 쓸 말이 없다.” 머릿속이 하얗고, 떠오르는 감정도 없고, 키보드를 치는 손끝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날. 그런데 그런 날에도 어떤 사람은 ‘한 줄’을 쓴다. 그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고, 의무감이 아니라 ‘자기와의 연결’을 위한 약속처럼 지켜진다. 그리고 바로 그 한 줄이 다음 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 단 한 줄이라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는 법’이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짧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쓸 게 없다는 날, 무조건 한 줄을 쓰는 이유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매일 쓰는 사람’이 오래 간다


창작자에게 가장 강력한 힘은 실력도 영감도 아니다. 꾸준함이다. 아무리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도, 꾸준히 쓰지 않으면 금세 감각이 무뎌진다. 반면 대단한 문장을 쓰지 못해도, 매일 쓰는 사람은 감각이 살아 있고, 무엇보다 ‘글쓰기의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감정보다, 결국엔 몸의 리듬에 달려 있다. 손이 글쓰는 동작을 기억하고, 눈이 문장의 흐름을 따라가며, 마음이 감정을 꺼내는 데 익숙해져야 비로소 글이 써진다.

한 줄이라도 쓰는 행위는 그 리듬을 끊기지 않게 만든다. 오늘 쓴 그 한 줄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는 오늘도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그 한 줄이 내일의 문장이 되고, 내일은 다시 단락이 되고, 며칠 뒤엔 하나의 글이 된다. 거대한 문장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일관된 리듬이 쌓이고, 그것이 감각을 만들고, 그 감각이 문장을 부른다.

나는 매일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어떤 날은 두 시간이 지나도 한 문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땐 무조건 한 줄이라도 쓴다. “오늘은 머릿속이 멈춰 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왜 이렇게 손이 무겁지.” 이런 문장들이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감정’을 붙잡는 일이다. 감정이 붙잡히면 문장이 따라온다. 한 줄을 쓰는 건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감정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꾸준함은 감정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일수록 한 줄을 써야 한다.

 

쓸 말이 없는 날의 문장이 가장 진짜다


신기하게도 쓸 말이 없다고 느낄 때 쓰는 문장이,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진심일 때가 많다. 준비되지 않았고, 계획도 없었고, 정제되지도 않았기에, 그 문장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담는다. 그 문장은 무의식의 표면에서 꺼낸 말이기 때문에 더 생생하고, 더 날 것 그대로 남는다. 많은 사람이 “이건 너무 거칠어서 안 될 것 같아”, “이건 정리가 안 돼서 못 써”라고 생각하지만, 글은 정리되었을 때보다 ‘있는 그대로’일 때 더 강하다.

나는 지금까지 써온 글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이 바로 “쓸 게 없어서 그냥 쓴 글”이었다. 의무감에 노트북을 켰고, 쓸 말이 없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으며, 그날 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낸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그 글에 “나도 똑같이 느꼈다”, “이 감정이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는데 글 덕분에 위로받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중요한 건 대단한 문장을 쓰는 게 아니다. 진짜 감정을 꺼내는 것이다.

쓸 말이 없을 때 쓰는 글은 계산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다. 계획된 글이 아닌 즉흥적인 감정의 언어는, 보는 사람에게는 ‘이건 진짜구나’ 하는 감각을 준다. 이런 글은 흔들리면서도 단단하고, 조용하지만 강하다. 우리는 완벽한 글이 아닌, 진짜 감정을 담은 글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런 글은 대개 쓸 말이 없을 때, 억지로라도 써본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 한 줄이, 진짜 말의 시작이 된다.

 

한 줄은 문장을 여는 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감정을 열고,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시작’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장 힘든 건 첫 줄을 쓰는 일이다. 그 첫 줄을 쓰기 전까지는 온갖 의심과 저항이 따라온다.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건 너무 억지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줄을 쓰고 나면 그 다음 줄이 따라온다. 그게 바로 한 줄의 힘이다.

나는 이걸 ‘문장의 문을 여는 행위’라고 부른다. 한 줄은 문을 여는 열쇠다. 그 열쇠를 돌리는 순간, 감정과 생각의 방이 열린다. 물론 그 방이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닫힌 채로 있는 것보다는 낫다.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오늘의 나를 마주보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한 줄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글을 쓰기 전, 아무 생각 없이 한 줄을 써본다. “오늘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다.” 이 문장들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써졌다는 것’이다. 쓰는 순간 몸이 기억을 떠올리고, 감정이 고개를 들고, 단어가 스스로 다가온다. 그건 글을 쓰는 몸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한 줄을 써야만 살아난다.

결국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단 하나의 문장이다. 그 문장이 내일의 글이 되고, 다음 문장의 문을 연다. 쓸 말이 없다는 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는 문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문장을 꺼내기 위해, 우리는 한 줄을 써야 한다. 매일, 무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