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잘하는 사람과 꾸준히 쓰는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짧게 반짝이고, 후자는 길게 버틴다. 실제로 글을 오랫동안 쓰는 사람은 ‘재능’보다는 ‘리듬’을 가진 사람이다. 그 리듬은 단순히 자리에 앉는 시간뿐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정리하고, 관찰을 기록으로 연결하고, 언어를 하루의 구조 속에 심어두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것을 ‘글쓰기 근육’이라고 부른다. 이 근육은 훈련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지고, 단단히 만들기 위해선 반복이 필요하다. 이 글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어떻게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떤 루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도 앉을 수 있는 힘, 문장이 멈췄을 때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감각, 그것이 곧 글쓰기의 체력이다.
글쓰기 근육은 ‘감각의 리듬’에서 자란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 근육을 ‘매일 쓰는 양’이나 ‘앉아 있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근육은 ‘감각이 일정한 리듬으로 깨어나는지’에서 만들어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면 좋은 이유는, 우리 뇌가 그 시간에 ‘언어의 감각’을 꺼낼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습관이 아니라 반응이다. 그리고 이 반응은 반복을 통해 길들여진다.
내게 가장 안정적인 글쓰기 시간은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다. 그 시간에 맞춰 몸과 마음이 글을 준비하고, 머릿속에서 문장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 글을 쓰는 날은 훨씬 수월하게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리듬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수개월 동안 반복한 결과다. 처음엔 집중이 되지 않았고, 한 문장 쓰기도 버거웠지만, 매일 그 시간에 자리에 앉아 손을 움직이는 훈련을 하면서 점점 감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글쓰기 근육은 단지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을 꺼내는 근육’이다. 감정을 읽고, 기억을 떠올리고, 상황을 문장으로 바꾸는 능력은 근육처럼 반복할수록 강화된다. 그리고 이 근육은 일정한 시간과 자리를 정해두어야 자란다.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엔 내가 글을 쓴다’는 선언이 있어야 감각은 자리 잡는다. 리듬은 근육의 조건이다. 감각은 반복에서 살아난다.
루틴을 ‘몸에 심는 법’은 단순함에 있다
많은 사람이 루틴을 만들려다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복잡하게 계획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틀고, 필사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루틴은 단순해야 오래간다. 루틴은 삶과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피로를 부르지 않아야 한다. 글쓰기 루틴을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기 전 해야 할 일을 줄이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에 앉기까지의 과정을 3단계로 줄였다. 커피 내리기, 메모장 열기, 이전 글 한 줄 읽기. 그다음엔 바로 타이핑을 시작한다. 의식적인 준비 동작 없이 바로 쓰는 것이다. 이 구조는 피로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이 가능하고, 반복되니 감각이 따라온다. 루틴이란 결국 ‘쓰는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자동화된 동선’이다. 그 동선이 단순할수록 몸은 그 흐름에 익숙해진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루틴을 지키지 못한 날’을 대하는 태도다. 루틴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고, 자책은 다시 회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나 이동이 있는 날은 루틴을 아예 ‘간이 버전’으로 설정한다. 30분 안에 한 단락만 쓰기, 메모장에 문장 세 개만 적기 같은 식이다. 이런 유연함은 루틴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중요한 건 ‘루틴을 망치지 않는 습관’이다.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흐름을 끊지 않는 것, 그게 근육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근육이 만들어낸 문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글쓰기 근육이 단단해졌을 때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이 무너져도 문장은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파도에 따라 글을 쓴다. 하지만 늘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어떤 날은 무기력하고, 어떤 날은 슬프고,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글쓰기 근육이 있는 사람은 그런 날에도 글을 쓴다. 왜냐하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더라도 손이 움직이고, 머리는 문장을 떠올리고, 감각은 천천히 따라온다. 이것이 바로 근육의 힘이다.
근육은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물론 감정이 있을 때 글은 더 진하게 나온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졌을 때도 쓰는 힘, 그 힘이야말로 오래 쓰는 사람의 기술이다. 나는 글을 쓰는 데 가장 힘이 되었던 날이 ‘쓰기 싫은 날에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글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내 안의 리듬을 지켰고,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반복은 결국 나만의 문체와 언어, 패턴을 만들어냈다.
글쓰기 근육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루틴 속에서 감각을 꺼내고, 일정한 시간에 자리에 앉고, 자책하지 않고 다시 이어가는 기술. 그것이 쌓일수록 우리는 감정이 흔들려도 문장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때부터 글쓰기는 ‘잘 쓰는 일’이 아니라 ‘계속 쓰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