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언제나 글의 원천이다. 거창한 사건이나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우리가 매일 겪는 장면, 감정, 대화 속에는 충분히 쓸 만한 재료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도 잘 쓰면 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상을 글로 옮기려 할 때는 막막함이 먼저 찾아온다. 너무 평범해서 쓸 게 없는 것 같고, 쓴다 해도 흐지부지 끝나는 느낌이 든다. 감정은 분명 있었는데, 글로 풀면 맥이 빠지는 이유. 그건 일상의 소재 자체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이 글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글쓰기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조는 감정을 모으고, 생각을 흐르게 만들며, 독자가 끝까지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글의 뼈대다. 글감이 아닌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 일상은 더 깊고 선명한 문장이 된다.
소재보다 흐름: 감정의 방향을 따라가는 구조 만들기
일상을 글로 옮기려 할 때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은 ‘소재 중심’의 글쓰기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느꼈다”로 끝나는 보고형 글은 독자에게 감정의 흐름을 남기지 못한다. 반면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글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다. 이 감정의 흐름이 글의 구조가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하루를 쓴다고 하자. 단순한 서사로 풀면, “카페에 갔고, 커피를 마셨고, 좋은 시간이었고, 돌아왔다”가 된다. 하지만 감정의 흐름으로 접근하면, “오늘은 유난히 카페의 조용함이 좋았다 → 왜 그 조용함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 최근에 너무 시끄러운 감정 속에 있었구나 → 그래서 그 고요가 특별하게 느껴졌구나”로 이어질 수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에피소드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긴다. 글의 시작은 사건일 수 있지만, 끝은 감정의 깊이여야 한다.
이 감정의 흐름을 잡기 위해 나는 ‘세 개의 감정 질문’을 쓴다. ① 오늘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꼈는가? ② 그 감정은 어떤 장면에서 시작되었는가? ③ 그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를 따라가면, 소재는 평범하더라도 글의 구조가 살아난다. 일상은 감정으로 읽을 때 비로소 문장이 된다.
일상의 장면을 문단 단위로 나누는 기술
일상 글쓰기를 하다 보면 글이 한 덩어리로 흘러가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흐름을 잃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장면 구분’이다. 글을 단락별로 나누고, 그 단락마다 하나의 장면이나 생각을 배치하는 기술은 일상 글을 단단하게 만든다. 글을 쓰기 전 “이 글을 세 장면으로 나누면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구조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글을 쓸 때 ‘초점 장면’을 정하고 그 전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오늘의 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 “버스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었던 시간”이라면, 그걸 중심 장면으로 잡는다. 그리고 앞 단락에서는 그 상황으로 향하게 만든 배경—예를 들어 하루 종일 지쳤던 이야기—를 쓰고, 뒷단락에는 그 장면이 주는 감정이나 떠오른 생각을 풀어낸다. 그렇게 세 개의 문단이 완성된다. 이 구조는 일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든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단락의 호흡’이다. 일상 글은 너무 길면 감정이 흐려진다. 그래서 나는 각 문단마다 감정이 한 번씩 바뀌게 한다. 예를 들어 첫 문단은 무기력함, 두 번째는 깨달음, 세 번째는 약간의 안도감. 이처럼 감정의 굴곡을 문단 단위로 조절하면, 글이 흐름을 갖게 되고,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장면이 흐르고, 감정이 바뀌는 구조. 이게 바로 일상 글에 필요한 ‘숨 쉴 틈’이다.
결론 없는 마무리가 더 긴 여운을 남긴다
일상을 쓰다 보면 자꾸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그 일은 나에게 이런 의미였다” 같은 마무리를 넣지 않으면 불완전해 보인다는 불안감. 하지만 일상은 원래 결론 없는 이야기다. 명확한 의미가 없고, 깔끔한 메시지가 없고, 그저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결론을 정리하지 않는 마무리가 더 현실적이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글의 마지막을 일부러 ‘열린 문장’으로 두는 편이다. 예를 들어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뭔가를 잃었는지, 얻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같은 문장. 이건 결론이 아니라 여운이다. 읽는 사람은 그 여운 속에서 자기 경험을 떠올리고, 문장을 자신의 삶으로 이어 붙인다. 글이 독자의 내면으로 확장되기 위해선 마무리가 열려 있어야 한다. 정리된 글은 읽는 순간 끝나지만, 여운이 남는 글은 읽은 뒤에도 마음에 머문다.
결론을 쓰고 싶을 때는 ‘감정의 상태’를 남기면 된다.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같은 자리에 앉으면 그 생각이 난다.” 이런 문장은 감정을 닫지 않고 열어둔다. 그렇게 하면 글은 마무리되면서도 끝나지 않는다. 일상은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 속에서 문장을 붙잡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일상을 글로 쓰는 이유다. 그리고 그 일은, 언제나 구조에서 시작된다.